AI 플랫폼 경쟁, 승부처는 ‘개발자 경험’





마이크로소프트는 비주얼 스튜디오 코드를 통해 개발자가 쉽게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성공 전략이라는 점을 배웠다.




Credit: Zamrznuti tonovi / Shutterstock



기술이 항상 새로운 것을 선사한다고 믿고 싶지만, 실제로 기술의 역사는 반복된다. 모바일, 클라우드 등 어떤 기술 흐름이든 개발자를 사로잡은 플랫폼이 시장을 지배해왔다. 마이크로소프트 부사장 스콧 거스리가 최근 인터뷰에서 자세히 설명한 것처럼,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와 닷넷(.NET)으로, AWS는 클라우드 기본 기술로 이런 교훈을 배웠다. 현재 AI 영역에서도 같은 흐름이 펼쳐지고 있다. 강력한 모델 자체도 중요하지만, AI를 일상적인 소프트웨어에 손쉽게 통합할 수 있도록 만든 플랫폼이 진정한 승자가 될 것이다.

즉, AI 경쟁의 중심은 연구 논문이나 GPU가 아니라 통합 개발 환경(IDE), API, 오픈소스 리포지토리다. 이 워크플로우를 제대로 구현한 쪽이 가장 크고 충성도 높은 커뮤니티를 확보하게 되며, 그만큼의 수익도 따라온다. 물론 승부는 아직 결정나지 않았지만, 여러 이유로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로소프트, ‘뜻밖의 선두주자’

마이크로소프트는 단숨에 AI 강자로 떠오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 우위는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결과이며 처음부터 AI와는 관계가 없었다. 핵심은 늘 개발자였다.



거스리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초기에 시장을 장악한 이유는 윈도우가 뛰어난 운영체제였기 때문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개발자가 윈도우용 애플리케이션을 쉽게 만들 수 있도록 도운 점이 핵심이었다. 거스리는 “누구도 플랫폼 자체를 사지는 않는다. 그 위에서 구동되는 애플리케이션 때문에 플랫폼을 선택한다”고 강조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은 퀵베이직, 마이크로소프트 C 같은 개발 도구에서 시작됐다. 이들 도구는 개발자가 윈도우 생태계를 구축하도록 이끌었다.

그 뒤를 이은 비주얼 베이직은 거스리가 “진정한 혁신”이라고 부를 정도로 획기적인 도구였다. 당시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만들기 위해선 오류가 잦은 코드를 힘들게 작성해야 했지만, 비주얼 베이직은 버튼을 드래그 앤 드롭하고 더블 클릭한 뒤 코드 몇 줄만 쓰면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할 수 있었다. 이런 방식은 개발 장벽을 대폭 낮춰, 복잡한 문법보다는 비즈니스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새로운 세대의 개발자를 탄생시켰다.

이런 전략, 즉 ‘개발자를 돕고 플랫폼을 장악한다’는 방식은 마이크로소프트 DNA 그 자체다. 2010년대 초반 개발자 생태계가 정체되며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춤했던 것도 이 전략이 흐려졌기 때문이며, 화려한 재기를 가능하게 만든 원동력도 이 전략의 부활이었다.



그 핵심이 바로 비주얼 스튜디오 코드다.

2014년 무렵 마이크로소프트는 맥과 오픈소스에 익숙한 차세대 웹, 클라우드 개발자의 관심을 잃었다. 거스리에 따르면, 당시 마이크로소프트 경영진은 자신들이 ‘천천히 녹아내리는 빙산’ 위에 있다고 느꼈다. 해결책은 더 나은 애저 포털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대신 닷넷을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크로스 플랫폼으로 전환했으며, 무엇보다 비주얼 스튜디오 코드를 출시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비주얼 스튜디오 코드는 무료이고 빠르며 오픈소스로 어디서든 동작했다. 애저 클라우드로 들어가지 위한 도구가 아니라 개발자가 좋아할 만한 훌륭한 툴 자체였다. 개발자의 사랑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신뢰 회복으로 이어졌고, 깃허브 인수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현재 마이크로소프트는 개발자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에디터(VS Code)와 협업 플랫폼(깃허브)을 모두 갖고 있다. 비주얼 스튜디오 코드는 전체 전문 개발자의 3/4이 사용하고 있으며, 깃허브에는 1억 명이 넘는 개발자가 있다. 거스리는 게르게이 오로스와의 인터뷰에서 “개발자가 플랫폼 위에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지 않으면 사업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지금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 플랫폼 위에서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하는 수많은 개발자를 확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깃허브 코파일럿은 애저에도 긍정적인 선순환을 만들었다. 더 강력한 AI 모델이 필요하면 비주얼 스튜디오 코드에서 클릭 한 번으로 애저 오픈AI 엔드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다. 당시엔 과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오픈AI에 대한 100억 달러 투자도 지금 보면 결코 비싸지 않다. 최첨단 연구 결과를 빠르게 ‘개발자 중심 가치’로 탈바꿈시키면서 경쟁사보다 한발 앞서나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뜻밖에도 다시 ‘쿨’해졌다.
AI 전쟁, 마이크로소프트의 승리로 끝날까?

이런 요소들이 마이크로소프트의 AI 패권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마이크로소프트를 따라잡기 어렵게 만드는 건 분명하다. AI 경쟁에서 승자는 독립형 AI 모델을 위한 API를 가장 잘 만든 곳이 아니라, 기존 개발 워크플로우에 AI를 완벽하게 녹여내 개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곳이 될 것이다. 거스리는 AI를 개발자를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인텔리센스(IntelliSense)’에서 현재의 AI 에이전트로 이어지는 진화의 연장선으로 본다. 거스리는 “모든 개발자에게 초능력을 부여하는 것, 그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런 접근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명백히 앞서 있다. 거스리가 구상하는 차세대 코파일럿은 단순히 코드 자동완성 도구가 아니라, 피그마(Figma) 디자인을 받아 실제로 동작하는 마이크로서비스 아키텍처를 구성하는 자율형 에이전트다. 개발자 역량 증강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이 비전을 실현한다면 경쟁자는 쉽사리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승리를 선언하기에는 이르다.


예를 들어, AWS는 탄탄한 개발자 기반과 전체 클라우드 지출의 1/3에 가까운 시장 점유율, 그리고 아마존 베드록(Amazon Bedrock), 아마존 세이지메이커(Amazon SageMaker) 같은 다양한 AI 서비스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AWS는 개발자 도구 영역에서도 입지를 다지려 하고 있다. ‘아마존 Q 디벨로퍼(Amazon Q Developer)’가 대표적인 예로, 깃허브 코파일럿과 유사한 기능을 제공할 뿐 아니라 AWS 요금 체계, IAM 정책, 쿠버네티스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바탕으로 동작하는 IDE 플러그인이다. AWS는 이런 도구를 통해 개발자가 워크로드를 AWS 플랫폼에 유지해야 할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하지만 AWS는 도구 중심 업체가 아니다. AWS의 강점은 방대한 인프라 기술 구성요소를 제공하는 데 있다. 문제는 이 경험이 마치 설명서 없이 자동차를 조립하는 것처럼 복잡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AWS의 자체 IDE인 클라우드9은 비주얼 스튜디오 코드에 비해 시장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다. AWS는 기술적으로 막강하지만, 개발자가 사랑할 만한 정제된 도구를 만드는 능력을 보여준 적은 없다.



AI 개발 도구 경쟁에서 AWS가 승리하려면 기업 DNA 수준의 변화를 동반해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단순히 GPT-4를 통합한 것이 아니라, 편집 경험 전체를 다시 설계했다. AWS는 이런 정교함을 따라가면서도 특유의 유연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기존 고객 기반만으로도 시장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개발자는 비주얼 스튜디오 코드에서 람다 함수를 작성하고 애저에 배포할지도 모른다.

오픈AI는 어떨까? 지금은 가장 주목받는 AI 모델과 개발자 인지도를 갖고 있다. 오픈AI의 API는 우아하면서도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신용카드와 파이썬 코드 몇 줄만으로 첨단 AI 기능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오픈AI는 플랫폼 기업이 아니다. 뛰어난 기능을 제공하긴 하지만, 결국 다른 플랫폼 위에 존재하는 기능 단위에 불과하다. 오픈AI는 코드 에디터도, 소스 관리 시스템도, CI/CD 파이프라인도 갖고 있지 않다. 승자가 되려면 오픈AI는 자체 개발자 생태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구축해야 하며, 이는 엄청난 도전 과제다. 아니면 API 중심의 성장세가 플랫폼 자체보다 더 중요하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경우 오픈AI는 단순한 ‘지능 계층’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으며, 진짜 가치는 그 API를 가장 효과적으로 통합한 플랫폼으로 흘러갈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주목하라

역사는 반복되지는 않지만,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과거 비주얼 베이직이 복잡함을 단순화하면서 개발 환경을 혁신한 것처럼, AI 기반 도구 역시 훨씬 더 큰 규모로 이런 변화를 이끌 것이다. 이런 이유로 마이크로소프트는 AI 시장 점유율 경쟁에서 가장 유력한 승자다.

물론 승리는 보장되지 않는다. 비주얼 스튜디오 코드의 성공 전략을 제대로 실행해, 개발자 경험을 최우선에 두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심지어 AWS나 구글 클라우드에 배포하는 도구를 만들더라도 마찬가지다. 비주얼 스튜디오 코드가 특정 플랫폼을 강요하는 느낌을 주는 순간, 그 마법은 사라질 것이다. 깃허브 역시 마찬가지다.

거스리가 강조하듯 마이크로소프트는 2010년대 초반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은 이후 줄곧 개발자를 중심에 두고 움직여왔다. 지금 마이크로소프트는 개발자의 키보드 가까이에서 출발하며, 그 위치를 지키기 위해 재무제표 전체를 걸 수 있는 각오까지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AI 플랫폼의 주기는 수십 년이 아니라 몇 개월 단위로 흘러간다. AWS는 막대한 자금을, 오픈AI는 개발자들의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으며, 양측 모두 성공을 기대하는 방대한 커뮤니티를 품고 있다. 이는 개발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지금처럼 개발자가 주도권을 쥐었던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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