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좋아하는 아이들, 이건 특히 열광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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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의 학교 구석구석에서는 휴대폰 게임 소리가 들린다. 교실에서는 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지만, 하교하는 모든 아이의 휴대폰까지 단속하는 건 어렵다. 게임에 진심인 아이들은 수두룩하다. 교문으로 걸어 나가며 화면을 보기도 하고, 계단 아래 모퉁이에 고개를 박고 손가락을 바삐 놀리기도 한다. 단 오 분이라도 짬이 나면 게임을 하는 것이다. 학원 차량을 기다리는 짧은 시간, 방과 후 교실이 시작하기 전 조금 비는 틈을 놓치지 않는다.
아이들이 휴대용 게임기를 소지한 역사는 길다. 나는 2009년부터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선생님으로 살면 자연스럽게 유행하는 게임기 기종을 알게 된다. 첫 발령을 받은 2009년에는 단연 '닌텐도 DS lite'가 압도적 인기였다. 반 아이들은 슈퍼 마리오를 비롯해 포켓몬스터를 열심히 했다. 일기장에는 주말에 주어지는 '자유 시간(부모님이 허용한 공식 게임 시간)'에 즐긴 게임 이야기가 소상히 적혀 있었다.
극소수의 '좀 사는 집' 아이들은 포터블 플레이스테이션인 PSP를 소유했다. 휴대용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고급 사양이 적용된 장비였다. 닌텐도 DS로는 구현하기 힘든 정교한 3D 게임이 원활하게 돌아갔다. 데스크톱 PC로 구동한 듯한 선명한 화질과 정교한 조작버튼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물론 모든 아이가 게임기를 가지고 다닌 것은 아니었다. 휴대용 게임기 보유 비중은 학급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비용 문제가 있었다. 게임기 본체와 게임 카트리지(팩)을 구매하려면 적어도 수십 만 원이 필요했다. 가정에서 아이에게 덜컥 사주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경제력이 된다고 해도 학습 습관을 해칠까 봐 사주지 않는 부모님도 계셨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이 다 함께 모여서 게임을 하고 싶을 때는 PC방으로 향했다. 학원가와 주택가 주변에 적어도 한두 군데의 PC방이 성업 중이던 시절이었다. 등교 거부로 유명했던 한 친구를 찾으러 온 동네 PC방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기도 했다. 하도 시끄럽게 소리치며 노는 탓에 초등학생 PC방 유저를 비하하는 의미로 '초글링'이라는 단어가 퍼지던 무렵이기도 하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발전으로 초등학생 게임 플레이의 양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스마트폰의 보급은 곧 휴대용 게임기의 보급을 의미하기도 했다. 전파가 터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게임방이 되었다. 초등학생이 굳이 돈을 내고 PC방에 갈 이유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최근 내가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언제 어디서든 게임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졌음에도 아이들은 혼자 플레이하는 것보다 친구와 같이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각자 집에서 접속하여 온라인으로 만날 수 있음에도 굳이 오프라인 공간에 모이는 것이다. 옛날 구식 비디오 게임기처럼 전선이 주렁주렁 연결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같은 현실공간에 모여 온라인 게임을 한다.
나는 이 현상이 꽤 신기해서 학교 안에서든 밖에서든 유심히 관찰하는 편이다. 벤치에 줄줄이 앉아서 플레이하는 애들도 있고, 육교 아래 시니어 일자리 할아버지가 가져다 놓은 소파에 누운 애들도 있다. 여름에는 더워서 땀이 흐르고, 겨울에는 추워서 바들바들 떤다. 왜 어린 게이머들은 로컬에 모여 게임하는 재미를 포기하지 못할까.
내가 나름대로 결론 내리기로는 '휴먼 터치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 같다. 함께 모여서 모바일 게임을 하면 혼자 할 때보다 색다른 맛이 있다. 무엇보다 침 튀기며 수다 떨기가 가능하다. "아이템 주워! 스킬 써! 피해! "같은 단발성 언어가 주를 이루기는 하지만 공기를 타고 전달된 진짜 말의 진동이 주는 환희가 있다. 채팅과는 결이 다른 의사소통 방식이다.
또 못하는 친구의 게임 플레이를 대신해주기도 한다. 친구 휴대폰을 가져다가 현란한 컨트롤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의 아이템을 나누기도 하고. 아이들 표현에 따르면 '쩔 하기(숙달된 고등급 유저가 초보 플레이어 도움 주기)'다. 그럼 또 고맙다고 아이스크림 과자 할인점에서 산 주전부리가 오간다. 어른으로 치면 골프 치면서 레슨도 약간 해주고, 보답으로 밥을 사는 개념이랄까.
나 또한 우연히 초등학생 게임판 가운데 끼게 된 적이 있다. 장소는 신축 아파트 입주박람회장이었다. 장인 장모님이 칠순이 되기 전에 아파트라는 곳에 한 번 살아보고 싶다 하셔서 생애 최초로 구입한 아파트였다. 아내는 장모님 곁에서 실질적으로 입주에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그동안 나는 우리집 두 초등학생을 돌봤다. 가구와 가전제품, 커튼을 비롯해 입주민을 위한 온갖 상품이 즐비한 가운데 어린이를 위한 오락실과 영화관이 있었다. 이름은 오락실이고 영화관이지만 실상은 소박했다. 매트 위에 오락기 두 대와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텔레비전이 놓여 있었다.
나는 오락실로 갔다. 신기하게도 그 오락기는 동전을 넣을 필요가 없었다. 기계 한 대에 내가 어린 시절 오락실에서 하던 게임 수백 가지가 설치되어 있었다. 만약 플레이를 하고 싶으면 목록에서 하나를 골라 버튼을 누르면 실행되는 방식이었다.
게임 'Golden axe(국민학교 시절 우리 동네 오락실에서는 '황금도끼'로 표기됨)'를 선택했다. 옆집 형과 거금 오백 원을 투자해 끝판 대장까지 갔던 전설의 게임이었다. 이십 년이 훌쩍 지났지만 메인 화면이 켜지는 순간 모든 지식과 요령이 되살아났다. 호리병을 여러 개 모으면 강력한 마법을 쓸 수 있다든가, 적이 타고 있는 공룡을 빼앗을 수 있다는 건 상식 중에 상식이었다.
차마 어린이 사이에서 무려 직업이 초등교사인 아저씨가 직접 플레이할 수는 없었기에 두 딸에게 조이스틱을 양보하고 훈수를 두었다. 덩치 큰 아저씨가 프로게이머 감독처럼 완전 몰입 상태에 빠진 모습이 웃겼는지 주변의 다른 어린이들이 슬금슬금 모이기 시작했다. 오락실 갤러리들은 등 뒤에 바로 붙어서 응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뒤에 해골! 피해!"
"불 쏘는 용! 빼앗아!"
매트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 옛날 2층 오락실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리운 느낌이었다. 오프라인에서 함께 모여 게임을 한다는 건 가슴이 뛰는 일이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소중한 캐릭터 목숨을 아껴가며 스테이지를 깨는 희열. 어린이 무리 가운데서 나는 깨달았다. 왜 오늘날에도 여전히 아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게임을 하는지.
고전 게임에 눈을 뜬 큰 딸은 내게 과감한 제안을 했다. 원래 숙제가 없는 일요일에도 문제집을 풀 테니 '황금 도끼' 끝판 대장 얼굴만이라도 보게 해 달라고. 나는 솔직히 놀랐다. 도대체 무엇이 구닥다리 시스템을 자랑하는 1989년 산 도트 그래픽 게임을 매력적으로 만드는걸까.
집에 전문 오락기는 없지만 게임용 패드가 하나 있었다. 딸은 게임 패드, 나는 키보드를 붙잡고 '황금 도끼' 2인용 플레이를 했다. 키보드 버튼만 누르면 '가짜 동전(크레디트)'이 달칵 쌓였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백 원짜리 동전 하나 넣을 때마다 '1'씩 올라가는 크레디트 효과음이 그렇게 짜릿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전기 신호 하나로 무한 목숨을 누릴 수 있었다.
손이 굳어 나와 딸의 캐릭터는 자주 죽었다. 그리고 가짜 돈으로 바로 부활했다. 서로 왜 그렇게 못 하냐고 면박을 주기도 하고, 마법 호리병을 먼저 먹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래놓고는 최종 보스(굉장한 근육질에 주인공처럼 마법을 써댔다)를 어렵게 잡았을 때는 하이파이브를 했다. 나란히 앉아서 게임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였다.
요즘 아이들은 무척 바쁘다. 다녀야 할 학원도 많고, 풀어야 할 문제집도 한 가득이다. 어른은 아이들에게 잔소리한다. 게임할 시간에 운동하고, 책을 읽으라고. 그것이 진짜 취미이자 여가생활이라 가르친다. 물론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비는 시간을 오롯이 자기 계발로만 사용할 수는 없다. 어른에게 술 마시지 말고, 담배 끊고, 모바일 쇼핑하지 말고, 유튜브 SNS 끊으라면 바로 실행할 수 있는가.
지나친 게임은 몸과 정신에 해롭다. 하지만 열심히 생활해서 취미로 누리는 '게임'이라면 신나게 주변 사람과 함께 즐거움을 공유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규칙을 정해 게임 시간과 방식을 제어하면 중독을 피할 수 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듯이, 게임도 함께 하면 즐겁다. 수십 년 만에 어린이 틈 바구니에서 황금도끼 플레이를 경험하며 나는 확실히 그렇게 느꼈다.
아이들이 휴대용 게임기를 소지한 역사는 길다. 나는 2009년부터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선생님으로 살면 자연스럽게 유행하는 게임기 기종을 알게 된다. 첫 발령을 받은 2009년에는 단연 '닌텐도 DS lite'가 압도적 인기였다. 반 아이들은 슈퍼 마리오를 비롯해 포켓몬스터를 열심히 했다. 일기장에는 주말에 주어지는 '자유 시간(부모님이 허용한 공식 게임 시간)'에 즐긴 게임 이야기가 소상히 적혀 있었다.
극소수의 '좀 사는 집' 아이들은 포터블 플레이스테이션인 PSP를 소유했다. 휴대용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고급 사양이 적용된 장비였다. 닌텐도 DS로는 구현하기 힘든 정교한 3D 게임이 원활하게 돌아갔다. 데스크톱 PC로 구동한 듯한 선명한 화질과 정교한 조작버튼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물론 모든 아이가 게임기를 가지고 다닌 것은 아니었다. 휴대용 게임기 보유 비중은 학급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비용 문제가 있었다. 게임기 본체와 게임 카트리지(팩)을 구매하려면 적어도 수십 만 원이 필요했다. 가정에서 아이에게 덜컥 사주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경제력이 된다고 해도 학습 습관을 해칠까 봐 사주지 않는 부모님도 계셨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이 다 함께 모여서 게임을 하고 싶을 때는 PC방으로 향했다. 학원가와 주택가 주변에 적어도 한두 군데의 PC방이 성업 중이던 시절이었다. 등교 거부로 유명했던 한 친구를 찾으러 온 동네 PC방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기도 했다. 하도 시끄럽게 소리치며 노는 탓에 초등학생 PC방 유저를 비하하는 의미로 '초글링'이라는 단어가 퍼지던 무렵이기도 하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발전으로 초등학생 게임 플레이의 양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스마트폰의 보급은 곧 휴대용 게임기의 보급을 의미하기도 했다. 전파가 터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게임방이 되었다. 초등학생이 굳이 돈을 내고 PC방에 갈 이유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최근 내가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언제 어디서든 게임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졌음에도 아이들은 혼자 플레이하는 것보다 친구와 같이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각자 집에서 접속하여 온라인으로 만날 수 있음에도 굳이 오프라인 공간에 모이는 것이다. 옛날 구식 비디오 게임기처럼 전선이 주렁주렁 연결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같은 현실공간에 모여 온라인 게임을 한다.
나는 이 현상이 꽤 신기해서 학교 안에서든 밖에서든 유심히 관찰하는 편이다. 벤치에 줄줄이 앉아서 플레이하는 애들도 있고, 육교 아래 시니어 일자리 할아버지가 가져다 놓은 소파에 누운 애들도 있다. 여름에는 더워서 땀이 흐르고, 겨울에는 추워서 바들바들 떤다. 왜 어린 게이머들은 로컬에 모여 게임하는 재미를 포기하지 못할까.
내가 나름대로 결론 내리기로는 '휴먼 터치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 같다. 함께 모여서 모바일 게임을 하면 혼자 할 때보다 색다른 맛이 있다. 무엇보다 침 튀기며 수다 떨기가 가능하다. "아이템 주워! 스킬 써! 피해! "같은 단발성 언어가 주를 이루기는 하지만 공기를 타고 전달된 진짜 말의 진동이 주는 환희가 있다. 채팅과는 결이 다른 의사소통 방식이다.
또 못하는 친구의 게임 플레이를 대신해주기도 한다. 친구 휴대폰을 가져다가 현란한 컨트롤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의 아이템을 나누기도 하고. 아이들 표현에 따르면 '쩔 하기(숙달된 고등급 유저가 초보 플레이어 도움 주기)'다. 그럼 또 고맙다고 아이스크림 과자 할인점에서 산 주전부리가 오간다. 어른으로 치면 골프 치면서 레슨도 약간 해주고, 보답으로 밥을 사는 개념이랄까.
나 또한 우연히 초등학생 게임판 가운데 끼게 된 적이 있다. 장소는 신축 아파트 입주박람회장이었다. 장인 장모님이 칠순이 되기 전에 아파트라는 곳에 한 번 살아보고 싶다 하셔서 생애 최초로 구입한 아파트였다. 아내는 장모님 곁에서 실질적으로 입주에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그동안 나는 우리집 두 초등학생을 돌봤다. 가구와 가전제품, 커튼을 비롯해 입주민을 위한 온갖 상품이 즐비한 가운데 어린이를 위한 오락실과 영화관이 있었다. 이름은 오락실이고 영화관이지만 실상은 소박했다. 매트 위에 오락기 두 대와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텔레비전이 놓여 있었다.
나는 오락실로 갔다. 신기하게도 그 오락기는 동전을 넣을 필요가 없었다. 기계 한 대에 내가 어린 시절 오락실에서 하던 게임 수백 가지가 설치되어 있었다. 만약 플레이를 하고 싶으면 목록에서 하나를 골라 버튼을 누르면 실행되는 방식이었다.
게임 'Golden axe(국민학교 시절 우리 동네 오락실에서는 '황금도끼'로 표기됨)'를 선택했다. 옆집 형과 거금 오백 원을 투자해 끝판 대장까지 갔던 전설의 게임이었다. 이십 년이 훌쩍 지났지만 메인 화면이 켜지는 순간 모든 지식과 요령이 되살아났다. 호리병을 여러 개 모으면 강력한 마법을 쓸 수 있다든가, 적이 타고 있는 공룡을 빼앗을 수 있다는 건 상식 중에 상식이었다.
차마 어린이 사이에서 무려 직업이 초등교사인 아저씨가 직접 플레이할 수는 없었기에 두 딸에게 조이스틱을 양보하고 훈수를 두었다. 덩치 큰 아저씨가 프로게이머 감독처럼 완전 몰입 상태에 빠진 모습이 웃겼는지 주변의 다른 어린이들이 슬금슬금 모이기 시작했다. 오락실 갤러리들은 등 뒤에 바로 붙어서 응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뒤에 해골! 피해!"
"불 쏘는 용! 빼앗아!"
매트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 옛날 2층 오락실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리운 느낌이었다. 오프라인에서 함께 모여 게임을 한다는 건 가슴이 뛰는 일이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소중한 캐릭터 목숨을 아껴가며 스테이지를 깨는 희열. 어린이 무리 가운데서 나는 깨달았다. 왜 오늘날에도 여전히 아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게임을 하는지.
고전 게임에 눈을 뜬 큰 딸은 내게 과감한 제안을 했다. 원래 숙제가 없는 일요일에도 문제집을 풀 테니 '황금 도끼' 끝판 대장 얼굴만이라도 보게 해 달라고. 나는 솔직히 놀랐다. 도대체 무엇이 구닥다리 시스템을 자랑하는 1989년 산 도트 그래픽 게임을 매력적으로 만드는걸까.
집에 전문 오락기는 없지만 게임용 패드가 하나 있었다. 딸은 게임 패드, 나는 키보드를 붙잡고 '황금 도끼' 2인용 플레이를 했다. 키보드 버튼만 누르면 '가짜 동전(크레디트)'이 달칵 쌓였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백 원짜리 동전 하나 넣을 때마다 '1'씩 올라가는 크레디트 효과음이 그렇게 짜릿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전기 신호 하나로 무한 목숨을 누릴 수 있었다.
손이 굳어 나와 딸의 캐릭터는 자주 죽었다. 그리고 가짜 돈으로 바로 부활했다. 서로 왜 그렇게 못 하냐고 면박을 주기도 하고, 마법 호리병을 먼저 먹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래놓고는 최종 보스(굉장한 근육질에 주인공처럼 마법을 써댔다)를 어렵게 잡았을 때는 하이파이브를 했다. 나란히 앉아서 게임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였다.
요즘 아이들은 무척 바쁘다. 다녀야 할 학원도 많고, 풀어야 할 문제집도 한 가득이다. 어른은 아이들에게 잔소리한다. 게임할 시간에 운동하고, 책을 읽으라고. 그것이 진짜 취미이자 여가생활이라 가르친다. 물론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비는 시간을 오롯이 자기 계발로만 사용할 수는 없다. 어른에게 술 마시지 말고, 담배 끊고, 모바일 쇼핑하지 말고, 유튜브 SNS 끊으라면 바로 실행할 수 있는가.
지나친 게임은 몸과 정신에 해롭다. 하지만 열심히 생활해서 취미로 누리는 '게임'이라면 신나게 주변 사람과 함께 즐거움을 공유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규칙을 정해 게임 시간과 방식을 제어하면 중독을 피할 수 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듯이, 게임도 함께 하면 즐겁다. 수십 년 만에 어린이 틈 바구니에서 황금도끼 플레이를 경험하며 나는 확실히 그렇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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